세시풍속

설, 설의 유래

헛발질 어중개비 2017. 1. 24. 17:00

 

                               설날 놀이 널뛰기, 요즘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어요

 

 

 

 

 

                                                      설 전날 떡메치기--떡을 만들어야지

 

 

 

 

 

 

 

                                                                설날 민속놀이--장작 윷  던지기

 

 

 

 

1. 설의 어원

설은 ‘서럽다’라는 말에서 생겨났다는 비탄설(悲嘆說)과 ‘설다’(밥이 설다, 낯이 설다) 등에서 생겨났다는 비숙설(悲熟說)

그리고 몸을 사리다(서리다)에서 생겨났다는 근신설(謹愼說) 나이를 세는 단위 ‘살’이 변하여 생겨났다는

연세설(年歲說) 등이 있다.

 

2. 설의 역사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 부여(夫餘)조에 “정월에 사람들이 모여서 국중대회를 열,고

하늘에 제사지내고 음주가무하면서 놀았다는 기록이 있다. (以殷正月 祭天 國中大會 連日飮酒歌舞 名之曰迎鼓)

 

이것은 은(殷)나라의 당시 세시풍속으로 보았을 때, 정월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하늘에 제사지내고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춤추고 놀았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의 설 명절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또 중국의 문헌인『수서(隋書)』에 “신라 사람들은 정월 원단에 사람을 만나면 서로 하례하고,

왕이 신하와 더불어 잔치를 베풀고 일월신에게 제사를 지냈다.(新羅人正月元旦 相面賀禮 王施宴與官員 祭日月神.

『舊唐書』에도 같은 기록이 있음.)고 했는데, 설날에 사람을 만나면 서로 하례하고,

제사를 지내며 잔치를 베풀었다는 것도 오늘날의 설 풍속과 거의 같다고 할 것이다.

 

3세기 문헌인 『삼국지』나, 7세기 문헌인 『수서』에 이러한 기록이 보인다는 것은 짧게 쳐도 설은 이미 2000년 전에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도 훨씬 전부터 있어왔던 풍속이었는데, 이때에 와서 문자로 기록된 것뿐이다.

 

 

 

 

 

                                                      

                                                                설날 제수장만은  생선가게에서부터

 

 

 

 

 

 

                                                       섣달 대목장 보기--상어 돔배기가 인기로구나

 

 

 

 

 

3. 설의 명칭

어원 학자들에 의하면 ‘설’이라는 말은 신라때부터 쓰여온 말이라 한다.

그런데 '설'이라고 하면 될 일을 일제강점기 때는 ‘신정(新正)’이니 ‘구정(舊)’이니 나누어 말하면서

우리 ‘설’을 멸시했던 때도 있었다.

1985년 ‘설’이 역사상 처음으로 공휴일이 되면서 ‘민속의 날’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는 모두다 우리 고유의 명절인 ‘설’을 멸시한 데서 이루어진 일이다.

역사 깊은 ‘설’을  ‘설’이라 하면 될 일 아닌가.

아직도 일제강점기 때 쓰던 '구정'이란 말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쓰는 사람들은 자존심도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설날 차례상--설날 아침 조상에게 제삿상을 바치다

 

 

 

 

 

 

                                                               설날 차례상이 그득하게 차려지다

 

 

 

 

4. 설 준비

우리 선조들은 설을 큰 명절로 여겨서 아주 중요시했다. 설이 다가오면 집 안팎을 깨끗이 청소하고, 빨래를 했으며,

빌린 돈이나 농기구도 다 갚고, 외출을 삼갔다.

그리고 밤이 되면 집안의 군데군데(마루 부엌 장독대 창고 우물 변소 등)에 등불을 켜놓고

악귀가 범접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이를 잔등(殘燈)이라 했다.

그리고 대문을 활짝 열어두어 복이 들어오도록 했으며, 식구들은 모여 앉아 떡을 하고 전을 부치면서 밤을 쇠었다.

이때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자는 아이들이 있으면 누나들이 눈썹에 쌀가루를 칠해 놓고 눈썹 쐰다고 놀렸다.

이렇게 밤을 보내는 것을 수세(守歲)라 했다.

 

 

 

 

                                                                설 차례상에 올려진 인절미와 절편

 

 

 

 

 

 

                                                             설차례 제수-- 전과 산적

 

 

 

 

5. 묵은세배

섣달그믐이 되면 젊은이들이 이웃에 있는 가난한 어른들을 찾아뵙고

아무 탈 없이 지내는가를 살펴보고 인사를 드렸다.

이때 슬그머니 쌀이나 고기 생선 과일 들을 두고 나온다. 어렵지만 무사히 설을 쇠도록 배려했던 것이다.

이를 묵은세배라고 했다. 미풍양속이 아닐 수 없다.

 

 

 

 

                                                  설날이 되자 시골 아낙들이 논벌에서 널뛰기를 했다

 

 

 

 

6.절식(節食)

명절에는 여러 가지 음식을 해먹는데, 이를 절식이라 한다.

설의 절식으로 대표적인 것은 떡국 떡 강정 수정과 등이 있다. 여기서는 가장 대표적인 떡국 이야기를 해보기로 한다.

떡국은 멥쌀을 빻아 쪄서 가래떡을 만들고 이를 굳혀서 쓸어 떡국을 끓인다.

떡국에는 닭고기 국물에 쇠고기 다진 것, 계란 지단 등을 올리기도 하나 예로부터 꿩고기 다진 고명을 제일로 쳤다.

꿩을 구하기 힘들어 닭고기를 쓰기도 했는데, 여기서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 생겨났다고 한다.

 

떡국을 즐겨 먹었던 이유는 떡국의 하얀 색깔은 부정을 타지 말라는 정화(淨化)의 의미가 있었고,

둘째 가래떡 하나로 여러 개로 나누니까 풍요다산(豊饒多産)의 의미가 있었으며,

셋째 가래떡은 길게 늘어진 것이니 수명장수, 넷째 동그란 떡국편은 엽전 모양이니 부자가 되라는 것,

다섯째 떡국편은 동그란 해 모양이니까 해의 양기를 받아 만사형통을 이룩하라는 의미도 지녔다 한다.

 

 

 

 

                                                정초가 되면 어느새 지신밟기 사람들이 마을을 돌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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