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승주의 선암사 모습
승주 선암사의 목장승
선암사(仙巖寺)는 전라남도 순천에서 서북쪽으로 약 20km 정도의 거리에 있는 고찰이다. 이 절은 이곳의 명산 조계산(曹溪山, 높이 884m)의 동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데, 『선암사사적기(仙巖寺寺蹟記)』에 의하면 542년(진흥왕 3년) 아도(阿道)선사가 ‘비로암(毘盧庵)’이란 이름으로 절을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또 875년(헌강왕 5년)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신선이 내린 바위 위에 지었다 하여 선암사라 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고려 선종 때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건하였는데, 임진왜란 이후 거의 폐사로 방치된 것을 1660년(현종 1년)에 중창하였고, 영조(英祖) 때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1824년(순조 24년) 해붕(海鵬)대사가 다시 재중창하였다. 6․25전쟁으로 소실되어 지금은 20여 동의 건물만 남아 있지만, 그전에는 불전 9동, 요사채 25동, 누문(樓門) 31동으로 도합 65동으로 이루어진 대가람이었다 한다. 조계산의 서편에 송광사(松廣寺)가 있고, 그 반대편에 선암사가 있어, 산의 양 자락에 대가람을 품고 있어, 이 양대 사찰은 우리나라 중견 불제자를 길러내는 수련도량(修鍊道場)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선암사 들머리의 장승거리
이 절에도 상당수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예거하면 삼층석탑(보물 제395호), 승선교(昇仙橋, 보물 제400호, 주-조선시대에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아치형 석교로서 홍예는 하단부에서부터 곡선을 그려 전체의 모양이 완전한 반원형을 이루고 있다. 기저부는 자연 암반으로 되어 있어 급류에도 휩쓸릴 염려가 없는 견고한 자연 기초의 교량이다.) 국사진영(大覺國師眞影, 보물 제1044호), 대웅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1호), 선암사 일주문(一柱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6호) 등이 있다.
전남 승주군은 장승이 많은 고장이다. 승주군 송광면 대흥리에는 목장승 2기가 서 있었고, 승주군 송광면 이읍리에도 목장승 2기가 있었다. 그리고 승주군 승주읍 죽학리에 있는 선암사(仙巖寺)에는 아주 묘하게 생긴 오래된 목장승 2기가 있었다. 이 글에서는 승주의 장승을 다 소개할 수는 없으므로, 가장 유명한 선암사 입구의 목장승 2기에 대하여 조금의 설명을 가하고자 한다.
절로 오르다 보면 승선교를 지나기 전의 길 양편에 나무로 된 장승이 각각 1기씩 서 있다. 이 절의 들머리에는 언젠가부터 이 목장승이 수문장처럼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오가는 길손들과 불제자들을 맞이하고 또 떠나보내곤 했다 하는데, 그 역사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냥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서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장승이 썩어지면 새로 만들어 세우고, 또 새로 만들어 세웠다 한다. 지금의 것은 1987년에 새로 만들어 세운 것이 지금까지 서 있는데, 그 바로 직전 것에 비하여 규모도 작고 장승에 새겨진 조각이 장난스러울 정도로 수준이 떨어져 있었다. 여기서는 먼저 옛것-구 장승(1987년 이전에 있었던 것)부터 설명하고, 요샛것-신 장승에 대하여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길 왼쪽의 방생정계(放生淨界)
옛것이 언제 세워졌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김두하 선생이 1975년에 조사한 내용의 추기(追記)에 보면(앞의 책 p.846.) 그 장승과 나이가 같다는 노스님이 있어 그 분의 출생이 1904년이라 하였으므로 그 말을 믿는다면, 이 장승은 이 세상에 83년을 존재하다 간 셈이다.
길가 왼쪽에 서 있는 것이 호법선신(護法善神)인데, 재료는 밤나무를 썼지만 오래되어 두상 부분은 비바람에 풍화되고, 썩어서 문드러지고, 갈라져서 구멍이 생겨 있다. 얼굴의 형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만도 다행이다. 1970년대의 조사 자료에 의하면 키가 2m였다 한다. 눈알과 코는 동그랗게 튀어나오도록 조각되어 있으며, 눈꺼풀도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입은 일자형으로 되어 있으나, 윗입술이 수염으로 덮여 있어 입술인지 수염인지 분간이 안 간다. 그러나 옆으로 팔자로 가늘게 뻗은 가지를 보아 수염인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아랫니와 턱이 또 겸하도록 조각되어 있는데, 얼른 보면 이빨처럼 보이기도 하고, 턱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아래로 짧은 턱에는 긴 수염을 붙였는데, 굵은 수염이 아래로 세 가닥 내려져 있다. 세 가닥 모두 곡선을 넣었는데, 가운데 것이 가장 길게 뻗어 내려져 있고 오른쪽 것이 매우 짧다. 가슴에서 배쪽으로 ‘護法善神’이라 양각해 둔 것도 특색이다. 왜냐하면 대개 음각했거나 붓으로 쓴 것이 많기 때문이다. 장승의 뒷면에 ‘갑진년(甲辰年)’이라 씌어 있으니, 1904년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새로 세운 신 장승은 1987년에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머리는 모자를 선 것처럼 만들어 두었고 눈알을 동그랗게 자국을 내고 검은 칠을 해 두었다. 그 아래 코를 만들고 입술을 만들었으나 어색한 형상이다. 수염도 구 장승처럼 곡선이 아니고, 그의 직선이어서 입체감이 나지 않는다. 그 아래 ‘護法善神’이라 쓰지 않고, 오른쪽에 서 있는 장승의 명칭인 ‘放生淨界'라 새겼다. 바꾸어 쓴 것이다.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길 오른쪽의 호법선신(護法善神)
길가 오른쪽에 서 있는 것이 ‘放生定界'라는 목장승이다. 역시 재료는 밤나무인데, 원래 세울 때는 2m가 훨씬 넘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땅 밑에 묻힌 부분이 자꾸 썩으므로 다시 파묻으니까 키는 자꾸 작아지는 것이다. 1970년도의 자료에 의하면 1.7m였다 한다.(주-선암사의 들머리 왼쪽에 서 있는‘放生淨界’의 키는 3m,머리 부분의 둘레는 1.4m였고, 오른쪽의 ‘護法善神’의 키는 2.9m, 머리쪽 둘레 1.4m였다. 2003년 1월 25일 필자가 현장 답사하여 실측함.)
이 장승의 머리 부분도 썩어서 가운데는 구멍이 뚫렸다. 눈알은 아주 크게 만들어졌으나 눈꺼풀은 뚜렷하지 않다. 그 사이 아래로 주먹코가 우람하게 자리를 잡았고, 넓게 벌려진 입에 이빨이 조각되어 있다. 턱이 있어야 할 부분에 둥근 원형의 무늬가 복잡하게 자리를 잡았는데, 수염이 곱슬곱슬하게 뭉쳐있는 것을 조각한 듯하다. 장승에 이런 수염을 붙인 것은 처음 본다. 그 곱슬곱슬한 수염 아래로 다시 세 가닥의 수염이 가슴까지 뻗어 있는데, 이것도 호법선신처럼 곡선으로 뻗어 내렸다. 가운데 것이 아래로 굴곡져 내렸고, 왼쪽 것은 왼쪽으로 초생달처럼 뻗쳤고, 오른쪽 것은 오른쪽으로 하현달처럼 뻗쳤다. 이 장승의 얼굴 모양은 신라 왕릉의 서역인 석상처럼 다분히 이방인을 닮은 얼굴을 하고 있다. 유별나게 큰 코와 큰 눈, 그리고 옆으로 길게 파진 입과 곱슬곱슬한 수염은 우리나라 사람 같지는 않아 보인다. 새로 세운 ‘방생정계’는 이름을 바꾸어 새겼을 뿐 아니라 글자까지 한 자 다르게 썼다. 구 장승에는 ‘放生定界'라 새겼는데, 신장승에는 ‘放生淨界'라 새겼다. ‘放生定界'란 ‘사람에게 잡힌 생명체를 방생하는 곳’이란 뜻으로 생각할 수 있고(주-선암사 ‘放生淨界’ 장승 옆의 간판에는 “이곳으로부터는 더욱 모든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여 매인 것들에게 자유를 베풀어야 함을 뜻한다”고 했다. 몸에는 붉은 색을 칠했다. 2003년 1월 25일 필자가 현장 답사하여 확인함.)
선암사 들머리의 계류 위의ㅡ강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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