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 이야기

하동 쌍계사의 목장승

헛발질 어중개비 2008. 4. 13. 19:07
 하동 쌍계사의 목장승  


                                                                                                                                     사진 복제 불허함

                                                     하동 쌍계사 들머리의 쌍계바위. 바위 양쪽에 장승들이 세워져  있었다.

 

 

 

                                             하동 쌍계사 가람선신(향 좌편, 1990년 현지촬영,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하동 쌍계사 외호선신 장승(향 우편, 1990년 현지촬영,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하동 쌍계사 아래 초등학교 근방의 장승(좌, 2010년 촬영)

 

 

 

 

                                                        하동  쌍계사 아래 초등학교 근방의 장승(우,  2010년 촬영)

 

 

 

                                                                                                                                    *사진을 무단 복제하면 위법입니다.*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雲樹里)에는 남도의 명승 고찰인 쌍계사(雙溪寺)가 자리잡고 있다.

이 절은 신라 성덕왕 23년(723년)에 의상의 제자인 삼법(三法) 스님이 창건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절의 뒤로 범왕리 계곡의 물과 불일폭포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각각 이 절의 앞과 뒤로 흘러내려

절 앞에서 합류하여 화개천을 이룬다 하여 절 이름이 쌍계사(두 개의 계류 사이에 있는 절)라 불렀다고 한다.

 

 절의 들머리를 지나서 조금만 올라가면 양쪽에 집채만한 바위가 각각 대문의 기둥처럼 서 있는데,

이 바위가 마치 이 절을 지켜 주는 수문장처럼 보인다. 왼쪽에 있는 바위에는 세로로 ‘’라 음각하여

글씨를 새겼는데, 이 글씨는 저 유명한 신라의 석학 고운 최치원 선생의 글씨라는 설이 있다. 들머리의

이 두 바위 앞쪽에 각각 나무 장승이 1기씩 서 있는데, 왼쪽 장승은 ‘가람선신(伽藍善神)’이고,

오른쪽 것은 ‘외호선신(外護계善神)’이다. 이 장승들의 특징은 나무의 뿌리가 달린 채로 장승의 얼굴을

조각하여 뿌리의 모양이 마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형상하고 있어 묘한 조형미를 보여 주고 있다.

 

거기다 눈알을 동그랗게 조각하여 튀어나오게 만들었으며, 코는 주먹코, 입은 가람선신은 윗니가 보이도록 했는데,

팔(八)자 모양으로 옆으로 벌어져 있고, 외호선신은 아랫니가 보이도록 조각했는데, 위로 약간 치솟아 있다.

입 아래로는 양쪽 다 수염을 조각해 놓았는데, 가람선신은 수염을 길게 왼쪽으로 뻗치게 했고, 외호선신은

입술 아래에 작은 수염을 달았다. 장승의 높이는 일정치 않다. 왜냐하면 장승을 만들 때 나무의 길이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가 1990년 2월 2일에 이곳을 답사했을 때는 양쪽 다 높이가 2.5m 정도 되었다.

 

 이 장승들의 역할은 대가람인 쌍계사 사찰을 보호하는 일을 맡고 있음은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장승에는

 페인트로 색칠까지 해 놓아 현대적 냄새가 나는데, 입과 눈을 흰색으로 칠했다. 또 하나의 특색은 장승의

 모양을 옛것과 그 뒤에 만든 것을 거의 닮도록 만들려고 노력한 점이 라 할 수 있다. 1967년의 것이

서울의 국립민속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이 자료와, 1977년에 찍은 김두하 선생의 자료와 1981년과

1990년대에 찍은 필자의 사진과 비교해 볼 때 거의 비슷함을 알 수 있었다.(장승은 현재 민속박물관 보관)

 

이 점은 쌍계사와 장승 제작가들이 우리의 문화재를 일관성 있게 유지해 가고자 배려한 것이므로 그 사려 깊은 작업을

필자는 높이 평가한다. 쌍계사를 가게 되면 절만 볼 것이 아니라, 들머리부터 시냇물과 바위 장승,

그리고 김대렴(金大廉-흥덕왕 3년, 828년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하는 길에 차의 종자를 가지고 와서

지리산에 심어 재배했다 한다.) 선생의 다비(茶碑) 등등 볼 것이 많다. 차분히 살피면 놓치지 않고 귀중한

문화재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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