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시 하북면 백록리에 있다.
양산시 하북면 백록리 국장생 모습
울주군 삼남면 상천리 소재 국장생
울주군 삼남면 상천리 소재 국장생이 서 있는 모습
양산의 국장생
양산군 하북면 백록리 718-1번지에 고려시대(고려 선종 2년, 1085년)에 세워졌다는 통도사국장생
석표(通度寺 國長生 石標)가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전체로 보아 나라에서 세운 국장승은 몇 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이 방면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그래서 보물 제74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로 여기서 지금 현재 남아 있는 국장생의 소재지를 말해 두고자 한다.
울주군 삼남면 상천리에 1기, 밀양군 무안면 무안리에 1기의 국장생이 있었다 하나 소재불명이다
.(주-『朝鮮金石總覽』에는 기문(記文)이 실려 있으나, 실물은 남아 있지 않다.
일제시대 무안천(당시 수안천)의 수로변경 토목공사를 하면서 땅속에 그대로 묻혔다는 설과,
어디로 옮겼다는 설이 있는데, 행방이 묘연하다.)
그리고,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道岬寺)의 경내인 동구림리에 2기, 서구림리에 1기의 국장생이 남아 있다.
필자가 양산의 국장생을 답사한 것은 1990년 2월 21일이었는데,
양산의 원효산에 있는 홍룡사와 홍룡 폭포를 구경하고 나오다가 하북면 백록리에 있는 이 국장생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장생은 장생이라기보다 긴 육면체로 생긴 돌비석이라 해야 옳겠는데,
비석의 크기는 높이가 2.2m, 폭이 60cm, 두께가 55cm 정도 된다. 새겨진 글자는 모두 50자이며,
세로로 4줄을 새겼는데, 해서체로 쓰여 있다. 나라에서 통도사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세웠다는 설과,
절의 비보를 위해 세운 것이라는 설이 있다. 비석에 명기된 내용을 보건대,
경계를 알리는 국장생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통도사는 신라 선덕왕 때 자장율사가 세운 것으로 전해지는데, 당시에는 상당한 자리를 차지한 큰 절이었다 한다.
비석에 쓰인 기문은 다음과 같다.
「通度寺 孫乃川國長生 一坐段寺 所報尙書戶部 乙丑五月日牒前 判兒如改立命是 於爲了
等以立 大安元年 乙丑十二月日記」
이 문장은 이두문으로 보이는데, 해석자에 따라 약간 차이를 보이고 있다.
1974년에 발간된 『通度寺』라는 책자의 풀이를 보면 “통도사 손내천 국장생 일좌는 절에서 문의한 바
상서호부에서 을축 5월 일의 통첩에 있는 이전의 판결과 같이 개립케 하도록 하므로 이를 세운다. 대안 원년 을축 12월 일 기록”이라 되어 있다.
기록(『通度寺事蹟略錄』)에 의하면 통도사에서는 산천의 비보를 위하여(주-비보인지, 경계인지,
아니면 비보의 역할도 하고 경계의 역할도 하도록 했는지 확실치 않다.)
원래 12기의 장생을 세운 바 있는데, 그 위치를 기록하기는 했으나,
지금의 위치와는 다르므로 확실히 어디에 있었던 것인지는 잘 알 수 없다.
그 재료는 나무(黑木)와 석비(石碑), 석적(石磧-돌묻이)의 세 가지로 세웠다고 했는데,
지금 남아 있는 이 돌비석은 석비에 해당하는 것이다.
양산 백록리 통도사 국장생 안내판
울주 상천리 국장생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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